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0~90년대 한국의 여아 낙태 문제 (문단 편집) === [[1990년대]] 초중반 === 1990년대 들어서는 처음으로 산아제한 정책이 다소 완화되었고, [[늦둥이]] 둘째나 셋째를 낳는 가정이 늘어 소폭 증가하기는 했다. 이때도 [[김영삼 정부]] 시절 성비 불균형이 위험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을 깨닫고 강력한 단속을 벌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 이러한 풍조는 끝나지 않았고, 1990~1994년에는 남녀 성비 불균형이 극에 달했다. 특히 1990년은 [[백말띠]]의 해라 하여[* [[경오|경오년]]] 이때 태어나는 여아는 팔자가 드세다는 [[일제강점기]]에 토착화된 [[미신]]이 나돌고 있었으므로, 116.5:100이라는 기록적인 최악의 성비를 기록했다. 1990년 음력 1~2월(양력 2~3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음력 1989년 12월로 일찍 출생신고를 하기도 한 경우도 있었으며, 1990년 음력 10~12월(양력 11~1월)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음력 1991년 설이나 1991년 입춘까지 묵혀두다 출생신고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출생신고를 미리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터라, 후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그래서인지 1991년 2월생들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비슷한 사례로 [[일본]]에서는 [[1966년]]에 출생아 수가 잠깐 줄어든 적이 있었는데, 이는 병오년에 태어난 말띠 여자는 기가 세서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두 사례 모두 말띠 해와 관련이 있다.] 또한 단순 통계로만 알 수 있었던 이 성비 불균형 문제는 1985~1989년생이 취학 연령이 되는 1990년대 초중반에 들어 초등학교 한 반에 남-남 [[짝꿍]]이 급격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마침내 1994년에 방영된 드라마 [[M(드라마)|M]]에서 [[낙태]]를 소재로 하여 사회에 높은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이들 모두가 학창시절인 2003년에 최고로 심했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뜻으로 '[[며느리]]도 수입하시렵니까?'라는 제목의 공익 광고가 나오기도 했는데, [[다문화]]를 존중하는 2010년대 후반 시점이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광고였다. 남아선호사상의 풍조는 198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제기되고 있었으나, 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인들과 386세대의 남아 선호는 나아지지 않고 여아 낙태를 계속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